컨설팅 출신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밥값 할 수 있을까요?
컨설팅펌의 연봉은 높지만 초기 스타트업의 자금 사정은 넉넉하지 않고, 기대가 크면 충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밥값 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을 담아 봤습니다.
컨설팅펌 출신들은 어디로 많이 이직할까요? 요즘에는 PE, 후기 스타트업 등 대형 업체로 많이 옮기는 것 같습니다만, 저의 경우 초기 스타트업이 첫 이직처였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첫 손에 꼽히는 선택지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초기 스타트업에서도 컨설팅펌의 높은 연봉을 어느 정도 맞춰 준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특히 "누구누구 선배가 모 스타트업 초기에 조인해서 몇 년만에 스톡옵션으로 대박을 터뜨렸다더라" 하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곤 했죠. 아침 해가 뜨고서야 퇴근하는 택시에 무너지듯 앉아서 잘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하며, 이럴거면 더 보람있고 업사이드도 열려 있는 초기 스타트업으로 이직해서 허슬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한숨 쉬다가 다음날이면 누군가의 goodbye email이 inbox에 들어와 있는 일의 연속이던 날, 그 때 컨설팅펌에 계시던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초기 스타트업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비중이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컨설팅펌에서 초기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꾸준히 또 많이 만납니다. 컨설팅 펌에는 항상 "어드바이저리의 한계를 넘어서 직접 제품과 사업을 만들어가면서 큰 임팩트를 내고 싶다"는 근본적인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죠. 몇 년 사이 headcount 자체가 훨씬 많아졌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ex-컨설턴트들이 스타트업 씬으로 유입됩니다.
반대로 스타트업 사이드에서 보면, 많은 대표님들이 컨설팅펌 출신을 채용하고 싶어합니다. 매크로와 상관없이 세상에는 항상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이 존재하고, 그들은 항상 최고의 인재들에 목말라 있기 때문이죠. 경험상 대규모 펀드레이징을 마무리한 직후이면서, 회사에 좀 더 체계를 부여하고 싶은 분들이 공동창업자에 준하는 C-level 채용이나 전략, PO, 사업개발, Chief of Staff 등 다양한 포지션의 리드급으로 컨설팅펌 출신 경력자를 찾는 듯합니다.
구직자와 구인자 모두 공통적으로 "과연 밥값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컨설팅 출신들은 초기 스타트업 환경이 어떤지 잘 모르기에, 과연 거기서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궁금해 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대표님들은 컨설팅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르기에, 높은 연봉과 스톡옵션이 아깝지 않을 만큼 좋은 퍼포먼스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듯하고요.
이 글에서는 저와 지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컨설팅펌 출신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밥값을 더 잘하기 위해 서로 알아두면 좋을 포인트들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이 글에서 이야기하는 상황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컨설턴트도 직급에 따라 상황과 skillset이 다르고, 스타트업도 스테이지에 따라 상황이 몹시 다르기 때문입니다.
- 초기 스타트업이란? Pre-A 또는 Series A 단계로, product-market fit을 찾았거나 최소한 제품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대규모 펀드레이징을 통해 빠른 성장을 도모하는 스타트업
- 컨설팅펌 출신이란? MBB 등 컨설팅 회사의 2~5년차로, PM role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으나 다수의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있으며, 모듈 하나를 온전히 책임지며, 저년차 컨설턴트 또는 인턴과 함께 co-work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위와 같이 정의한다면, 초기 스타트업은 아직 적자를 보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기존 멤버들은 회사의 성공을 위해 최저 수준의 급여를 감내하며 초기 제품을 개발하느라 주말도 없이 일해 왔을 거고요. 어쩌면 멤버들 중 당신이 가장 나이가 많고 경력도 길 수도 있습니다. 컨설팅 펌에서 누가 온다던데, 과연 스타트업에서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누군가는 기대하고 누군가는 우려하고 있을 겁니다.
반면 컨설팅펌의 연봉은 높습니다. MBB 기준, 일반적으로 만 3년 경력의 고성과자는 연봉과 보너스를 포함해 세전 2억원 수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협상의 베이스라인이 높게 시작하기 때문에 아마 당신은 동료 직원들보다 현저히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안받게 될 가능성이 높고, 스톡옵션 또한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팀원 중 가장 높은 편일 가능성이 큽니다.
한마디로, 밥값 하기가 참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회사 성장에 쓸 자금도 부족한 형편에 비싼 밥 먹고 있는 데다가,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밥값을 확실하게 못 하는 방법
작고하신 버크셔 해서웨이의 부회장 찰리 멍거는 '뒤집어서 생각하는 사고 모델'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공군 장교로 복무할 때 기상 관측 업무를 맡았고, 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조종사들을 죽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하죠. 조종사를 죽이는 방법을 안다면 이를 피하는 방법을 알 수 있으니까요. 그는 계속 뒤집어서 생각한 끝에, (1) 비행기를 제대로 녹이지 않고 꽁꽁 언 상태로 두는 것 (2) 기체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기름이 부족하게 만드는 것 두 가지가 풀어야 할 핵심 문제였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비슷하게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밥값을 충분히 못하고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1) 창업가의 비전에 대한 동조율이 낮으면 됩니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내가 창업가의 비전에 얼마나 공감하는가?"가 정말 중요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재차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창업가의 비전에 공감하지 않고도 조인할 수 있나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비전에 공감하지 않아도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조인할 수 있습니다.
- 아주 유망한 도메인의 비즈니스인 것 같습니다. 몇 년 바짝 일하고 나면 왠지 성공할 것 같고, 컨설팅 + 해당 섹터 경력이면 못 갈 곳이 없을 것 같습니다.
- 성장세가 엄청납니다. 이대로 가면 다음 라운드 펀딩도 금방 받을 것 같고, 대충 계산해 보니 스톡옵션 가치 상승으로 xx억 정도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우리 아이템이 기존 시장의 문제를 굉장히 잘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품도 마음에 들고 사업 모델도 혁신적인 것 같습니다.
- 나한테 좋은 직급을 오퍼합니다. '나 이 정도였나...?' 싶은 생각도 얼핏 들지만... 역시 아마도 내가 굉장한가 봅니다.
다 말이 되는 합당한 이유입니다. 컨설턴트들은 말이 안 되는 이유로 움직이지는 않으니까요. 그렇지만 pre-A나 Series A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은 더 후기 스테이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만, 그 정도가 더 심합니다.) 예를 들어, 입사한지 불과 몇 달만에 아래와 같은 일들이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 거품이 순식간에, 그리고 허망하게 꺼집니다. 이 섹터가 유망하다고 떠들어 대던 그 유명한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반대편에서는 "I told you"를 쏟아냅니다.
- 갑자기 자본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잘 나가던 옆집에서 구조조정을 하더니, 다운라운드를 한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 처음에 면접 볼 때 이야기하던 사업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피벗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왠지... 뜬금없는 것에 꽂히신 것 같습니다.
- 갑자기 내 위로 시니어가 들어와서 대표님과 나 사이에 레이어가 하나 더 생깁니다. 어라 이러면 나가리인데...
시장 상황도 변하고, 사업도 피벗할 수 있으며, 조직 구조도 바뀔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표님 본인과, 사업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 그리고 그/그녀가 종국에 만들고자 하는 회사의 모습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그 비전과 가치에 공감하기 어렵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때 모티베이션과 몰입감을 유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퍼포먼스가 떨어지고, 끝내 목표했던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이탈하게 될 수도 있죠.
반대로 창업가의 비전과 동조율이 높으면, 회사의 상황이 변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밥값을 차고 넘치게 하기도 합니다. 대표님이 빠르게 방향을 수정하고 발산적으로 새로운 일을 벌이면, 컨설팅 출신 인재들은 이를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정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다시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죠. 이 과정에서 창업가 및 구성원들과의 신뢰가 더 깊어지고, 직급과 처우도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깊게 이해하기는 원래 어렵기에, 충분히 대화를 나누었다 해도 예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창업가도, 컨설턴트도 워낙 바쁘다보니 몇 번의 미팅만으로 이직/채용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더욱 그런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서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이며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2) 생각과 말을 많이 하고, 실행은 조금만 하면 됩니다. (그것도 천천히)
컨설팅펌에서의 문제해결은 말과 글로써 이루어집니다. 클라이언트는 신사업 전략, 운영 최적화, M&A 실사 등 다양한 주제로 "답하기 어려운 경영상의 질문"을 던지고, 컨설턴트는 메시지와 백업을 담은 스토리라인을 장표에 담아 "보고를 통해 답"을 하는 방식이죠. 정말 심플하게 보면, 대답할 수 있으면 문제가 해결된 셈입니다. 어디까지나 컨설팅 회사 입장에서는요.
실제로는 컨설팅 회사가 전달한 답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클라이언트 조직의 의사결정 및 실행으로 이어져야만 비로소 진정한 문제해결이 이루어지죠. 다만 대기업은 조직이 크고 세분화되어 있어서 전략을 세워도 실행으로 옮겨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뿐 아니라, 반도체나 중공업 등 대규모의 선제적 투자가 필요한 산업은 lean하게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실행에 앞서 세세한 기획안과 철저한 사전 실사가 요구되는 이유이며, 컨설팅 회사가 "실행도 아닌 고작 말과 글"을 준비하는 데 그토록 진땀 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실행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실행을 아주 많이 해서 대부분의 결과물이 실패한 이후에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곤 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의 조직은 작고 민첩하며, lean한 실행이 가능한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잃을 게 없죠. 어떤 액션을 하든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으며, 계획을 세워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이 사실을 머리로는 분명 아는데, 첫 한 달 정도는 온전히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습니다. 어떤 문제 상황을 맞닥뜨리면 문제 상황을 분석하고 해결 계획을 수립하느라 실행이 늦어지는 일이 종종 있었죠. 중용이 최선이겠으나, 경험상 컨설팅 출신은 "고민 없이 급발진 하는 쪽"보다는 "고민하느라 실행하지 않는 쪽"에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과거의 저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적어 보았습니다.
A) 분석할 시간에 실행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컨설턴트들은 "이 문제가 실제로 얼마나 큰지, 만약 큰 문제가 맞다면 root-cause는 무엇인지" 논리적이고 정량적으로 파악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런데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why so(문제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보다도 so what(원인을 몰라도 그래서 문제가 해결됐는지)만이 중요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이커머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배송 지연 이슈를 해결하는 게 과연 가장 임팩트가 클지 고민하던 때의 제가 딱 그랬죠. 직관적으로는 문제일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지표를 트래킹할 데이터가 당시에는 없었기 때문에, 실제 배송지연율은 몇 퍼센트이고 경쟁사와 비교하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문제 상황을 먼저 진단하고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저는 며칠째 파이썬 코드를 짜고 있었습니다.
"OO아, 오늘 갑자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우리 배송 느리다고 도배되고 있는데 이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어? 당장 뭐라도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야?" 문제 상황 분석에 매몰되어 있던 중 흥분한 동료의 말 덕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날이었습니다. 즉시 판매량이 많은 셀러들 5개 정도를 골라 고객센터로 인입된 CS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니, 대형 셀러 몇 군데가 배송을 대규모로 지연시키고 있더군요.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악하고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일이 필요하긴 합니다. 실제로도 결국은 그렇게 했고요. 그렇지만 저 때 했어야 하는 건 코딩이 아니라, 문제를 대충이라도 빨리 파악한 다음 전화를 돌려서 당장의 고객 불만을 잠재울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하는 일이었던 거죠. 비록 확장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도, 사람이 적은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지금 즉시 고객의 불편을 해결할 수 있는 액션을 빨리빨리 치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 중 하나였습니다.
B) 설명하고 설득할 시간에 실행하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컨설팅에서 일 잘하려면 상사 또는 클라이언트와 미리미리 align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lign"이란 작업 계획에 대해 사전에 합의를 거치는 것을 의미하죠. 예컨대 이런 겁니다.
"우리는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고, A B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런 접근법을 거치면 예상되는 산출물은 X Y이고, 작업에 소요되는 시간을 이렇게 될 거예요. 혹시 관련해서 하실 말씀 있으면 지금 하세요. 없으면 동의한 걸로 압니다, 나중에 딴 소리 없기."
이렇게 작업 계획이 합의되고 나면 기존에 소통한 대로 진도를 나가는 한편, 최종적으로는 내부 의사결정자(주로 파트너)를 충분히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진짜 실행의 주체인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있으니까요. CEO 보고 전에는 pre-wire라는 "보고를 위한 사전 보고" 작업도 합니다. 보고 받은 사장님이 마음에 안 들어서 뒤집으면 큰일이니까 우리가 맞게 가고 있는건지 간을 보는거죠.
초기 스타트업에서는 상대적으로 설명이나 설득이 덜 필요합니다. 특히나 과거 애플에서 만들어지고 국내에서는 토스로 인해 유명해진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s) 구조 하에서는 책임자가 결정한 대로 실행하면 그뿐, 사전에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도, 설득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죠. 그저 충분히 설명하고, 듣고, 스스로 결정한 대로 행하면 그만입니다.
초창기를 돌이켜 보면, 실행하기에 앞서 불필요하게 설명하고 align하려 애쓰던 시간이 있었던 듯합니다. (정보 공유 및 input을 받기 위한 차원은 괜찮지만, 합의와 설득이 목적이 되는 순간 본질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차이가 은근히 미묘하지요.) 대표님과의 1 on 1 미팅이나 전사 all-hands meeting때 그냥 선제적으로 실행한 다음, 결과 및 회고 중심으로 시간을 썼다면 더 효과적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사의 자원을 무지막지하게 쓰는 결정이 아닌 이상요.)
실행, 실행, 오로지 실행만이 답입니다. 실행하기에 근거가 부족한 것 같아서 자꾸만 더 분석하려고 들고,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자꾸만 확신을 더 얻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해당 문제의 오너인 당신의 직관을 때로는 좀 편히 믿으라는 말씀을 건네고 싶네요. (사실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밥값 10x, 할 수 있습니다.
찰리 멍거 선생님 말씀대로 함께 worst case scenario를 상상해 보았지만, 시장에서 컨설팅펌 출신을 꾸준히 많이 찾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선배 컨설턴트들이 스타트업 씬에 빠르게 적응하고 충분한 밥값을 해냈기 때문이겠죠.
이번에는 반대로 초기 스타트업의 창업가 입장에서, 컨설팅 출신을 뽑으면 어떤 역량을 조직 내에 수혈할 수 있을지 간단하게만 짚어보려고 합니다. 어떤 스킬셋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밥값을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테니까요.
1) 새로운 정보를 구조화해서 빠르게 받아들이고, 문제를 잘 정의하는 역량
컨설턴트들은 낯설고 복잡한 개념이라도 구조화를 통해 빠르게 이해하는 편입니다. 매번 새로운 산업을 빠르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죠. 때로는 AI, Cloud, 반도체 등 어렵고 낮선 제품과 기술들도 빠르게 이해하기 위해 적당한 수준으로 묶고 쪼개는 구조화 훈련을 반복합니다.
딥테크나 바이오 등 특히나 어렵고 생소한 도메인의 비즈니스를 하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투자자에게 사업을 더 쉽게 설명하는 데 컨설팅 출신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구조적 사고는 문제를 정의하는 데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처음에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문제들을 답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쪼개고 정리하는 것이죠. 따라서 여러 사람이 협업해야 하는 경우 컨설팅 출신 인력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해서 여러 사람들과 sync를 맞추고, 일을 겹치지 않게 쪼개는 관점에서요.
2) Project Managing 역량
잘 쪼개진 일의 단위를 시간축으로 뿌리면 그대로 작업 계획이 되죠. 특히 Project Manager까지 경험한 분이라면 작업 계획을 수립하고 진도를 관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PM을 달지 않아도 작업 계획 하에서 마일스톤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주니어 컨설턴트 또는 인턴을 이끌고 작은 프로젝트를 매니징하는 일은 2년차 이상이 되면 경험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각개전투 위주로 일하던 스타트업이라면 참고가 될 수 있겠습니다.
3) 스타트업 각지에 퍼진 peer network
컨설팅펌 출신들은 스타트업씬 내에 다양한 회사로 흩어져 서로 지속적으로 교류하게 됩니다. 그 중에는 사업 규모가 크고 좋은 체계를 갖춘 대형 IT기업으로 성장한 회사들도 있고, 초기 단계지만 무서운 속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곳도 있죠. 이러한 동료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회사들은 어떤 체계를 갖추고 일하는지, 또 다른 산업에서는 특정 현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인사이트를 얻을 기회가 넓게 존재합니다.
4) 정량적 분석 및 재무 모델링 역량
컨설턴트는 항상 숫자와 논리로 근거를 마련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물론 직관에 따라 빠르게 행동하는 경우도 많지만, 초기 스타트업 역시 데이터에 기반해서 수많은 제품/사업적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에 분석 역량은 크게 도움이 됩니다.
특히 M&A CDD나 PMI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하는 경우 재무 모델링에 익숙할 텐데요. 당사의 KPI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핵심 driver별로 어떤 수준을 만족해야 하는지, 이를 달성한다는 것은 시장 점유율이나 비용 측면에서 어떤 시사점을 갖는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업 계획 수립시 아주 유용한 도구입니다. 물론 IR을 준비할 때도 큰 힘이 될 수 있고요.
맺으며
컨설팅 출신이라고 모두가 상술한 역량을 가지고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일 것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재직 중 어떤 프로젝트에서 어떤 workstream을 담당했는지에 따라 경험의 종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죠. 다만 관련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집단이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에게 필요한 전문성을 가져다 줄 가능성은 높아 보입니다.
스타트업 씬에서 더 많은 컨설팅 출신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