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알못도 미국에선 백종원 가능합니다

지난 글에서 한식이 미국에서 얼마나 잘 나가는지, 왜 당장 식당 차려서 깃발 꽂으셔야 하는지 알아봤습니다.

K푸드, 국뽕 빼고 분석해봅시다.
K푸드—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더 갈까요? 다들 그렇다고는 하는데 정말 잘 팔리는 거 맞나요?

3줄요약 (1편)

  1. K푸드는 요즘 미슐랭에서 프렌치를 이길 만큼 미국 주류에 깊게 침투 중이다.
  2. K컬처 열풍 그리고 "건강" 브랜딩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
  3. 그럼에도 대중적인 한식수요 충족해 줄 한식당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이 캐주얼한 영역에서 어마어마한 업사이드가 나올 것이다.

1. 프롤로그: 그렇다고 샌드위치가 될 수는 없으니까

들어가기에 앞서 아직까지 미국 한식 브랜드 사업에 대한 실증적인 분석 혹은 투자 내러티브를 논하기에 시기상조라는 점은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대중적인 한식메뉴로 사업에 뛰어드는 창업가들이 이제 막 쏟아지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못해도 5년은 지나고 성적표 받아드는 업체들이 하나 둘 나와봐야, 뭐가 좋았고 뭐가 아쉬웠는지 복기 가능해질텐데요.

그럼에도 현 시점 미국 시장에 접근하기 위한 최적의 내러티브가 무엇인지는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합니다. 창업부터 투자, 엑싯까지 모든 단계에서 한국 F&B랑은 달라도 너무 다른 게 미국이거든요.

기사식당 오마주해서 최근 맨해튼에 오픈한 KISA. 3인분 17만원 꼴인데 이것도 뉴욕에선 무난한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늘 순서는 미국 어떻게 공략할지 파헤쳐보는 How 파트입니다.

한국에서 흔히 "한식당 사업/투자"하면 떠올리는 몇 가지 선입견들을 먼저 짚어보고, 이 선입견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각각에 대한 현실적인 해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지난번 큰소리 친 "당장 미국에서 한식당 차리시라"에 대한 핵심근거는 이번 글에 모두 녹아있습니다.
국뽕 겨우 뺐더니 미국뽕이 생겼다.

네, 세어보니 미국을 총 65번 적었더군요.

K푸드 성장세 얘기하면서 미국, 김밥 얘기하다가도 미국, 안성재 나오길래 이제 다른 주제 넘어가나 싶었더니 그럼 고든램지 넘기러 미국 넘어가시라. 트럼프보다 더한 미국무새였습니다.

실제로 Hell’s Kitchen에서 캐스팅 중이다. 물론 덜 익히면 등신샌드위치 될 각오는 하셔야 한다.

호기롭게 재야의 요리고수 그리고 내 브랜드 꿈꾸는 모든 분들께—아니 취준고민 많으실 대학생들도 혹할 만큼 아메리카 찬양했습니다만, 아무리 골드러시라도 내가 팔려는 게 청바지인지 흰바지인지도 모르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최소한 뭐가 통할지는 알아봐야겠죠.

각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 내러티브 점검

Bias 1: K-BBQ, 치킨, 비빔밥만 통한다

창업 아이템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K-BBQ, 한국식 치킨, 비빔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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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뜯어보면 레스토랑 사업 확장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가진 아이템들입니다. 정답을 미국에서 찾을 게 아니라 한국에서 스케일이 검증된 아이템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물론 미국에서 한식으로 가장 높은 대중성을 확보한 메뉴가 K-BBQ, 한국식 치킨, 비빔밥인 건 분명한 팩트입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이 3개 아이템에 기반해서 개별 혹은 소수매장 단위로 사업을 성공시킨 사례는 있어도, 정작 미국 전역으로 매장을 늘려가며 외형성장을 이룬 케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거죠. 이는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K-BBQ, 한국식 치킨, 비빔밥은 Fast Casual 아이템으로서 MZ세대를 타겟하고 스케일하기 위한 5대 핵심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데에서 기인합니다.

  1. 빠른 회전율
  2. 가격 경쟁력
  3. 메뉴 다양성
  4. 포장/배달 접근성
  5. 일정한 품질

우선 K-BBQ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뉴욕은 맨해튼 내에만 20여개 K-BBQ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최소 1시간 이상 대기가 기본일 만큼 최악의 회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인기가 많다는 거지만 오퍼레이션상 수요 대응이 안 되고 있다는 뜻이겠죠.

포장/배달 접근성이 떨어지는 건 고사하고 가격 경쟁력도 그다지 뛰어난 편은 못 됩니다. 일례로 메시가 방문했다는 COTE은 스테이크 오마카세 가격이 인당 $225를 넘습니다. 저야 제 일본인 친구가 가격 보고 놀랄 생각하면 통쾌하지만 그 말인 즉슨 대중들이 만만하게 접근할 메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국내 문화와는 다르게 현지 젊은 연령대는 직접 고기를 구워야 한다는 점 때문에 염증을 느끼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합니다. 물론 숙련된 서버가 구워주는 경우도 있겠으나, 이런 방식으로도 굽기 결과가 제각각이라 음식품질이 일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겠죠.

손님들 "언이븐" 컴플레인 쏟아질 게 뻔한데, 아마 안성재 셰프도 K-BBQ는 어렵지 않을까?

대부분 저녁 시간대로만 매출이 몰리고 혼밥러는 접근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베지테리언 층에는 소구할 수 없다는 점도 대표적인 단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야 아직 미미한 비중이지만, 미국은 베지테리언이 전체 10%로 추정될 만큼 절대 무시할 수준이 아닙니다.

한국식 치킨의 경우, 포장/배달 접근성은 좋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Chicken Finger 메뉴만 특화한 브랜드가 있을 정도로, 생각 이상으로 경쟁이 치열하고 대체재가 넘쳐나는 시장입니다. 후발주자로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한국 만큼이나 난이도 높은 환경인 거죠.

비빔밥은 위 대부분 문제를 내포한다는 점에 더해 결정적으로 국내에서도 검증되지 않은 아이템이라는 점이 현지 사업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배경입니다.

실제로 과거 한국정부 차원에서 해외에 한식을 알릴 때 타 아시안 음식과의 차별화를 위해 Pretty, Exotic 측면을 살릴 수 있는 비빔밥, 잡채 위주 홍보 캠페인을 진행했었고, 그 결과 비빔밥은 현재 글로벌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한식 중 하나가 되긴 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비빔밥 자체가 꽤나 노동집약적인 음식입니다. 집에서는 대충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만들다 보니 간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럴듯한 한상을 차려내야 하는 식당 입장은 다릅니다. 비빔밥 주재료 나물은 세포 깊숙이 수분을 품는 특성상 상온에 잠깐 둬도 상하는 일이 많거든요. 보관 문제에 더해 일일이 손질까지 필요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진입장벽이 높은 메뉴인거죠.

물론 비빔대왕이 비비면 쉰나물도 부활할 것 같긴 하다.

그래서인지 한국 외식업계 안에서도 비빔밥만 가지고 유의미하게 지점을 확장하며 스케일한 사례는 여태 탄생하지 못했습니다. 한식 브랜드 중 본죽&비빔밥처럼 다른 메뉴와 곁들여서 매장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비빔밥 전문 프랜차이즈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요. 일례로 배달의민족이 2017년부터 공개 중인 연간 메뉴 탑10 순위에 비빔밥은 한 차례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도시락의 경우 위 핵심조건 모두를 충족하는 상당히 이상적인 아이템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 2022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도시락을 포함한 한식 가맹점 성장률은 2021년 기준 40%에 달합니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자리잡은 "가성비 한 끼" 트렌드에 힘 입어 고속성장하는 추세인데요.

‘오너 父子경영’ 한솥, 고물가에 날개 단 도시락…배당도 최대
고물가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직장인이 늘면서 한솥 실적에도 날개가 달렸다. 2년 연속 매출액 1000억원대, 영업이익 100억원대를 기록했다. 1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도시락 프랜차이즈 한솥도시락을 운영하는

대표적인 도시락 업체로는 한국 외식 프랜차이즈 매출액 최상위권을 다투는 본아이에프, 그리고 2023년 매출 1,371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한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참고로 현재 한식 프랜차이즈 평균 폐점율이 18%인데 한솥은 3%로 업계 최저수준에 속하기도 하죠.

이런 배경에서 미국 내 다른 한식 아이템보다 인지도는 확실히 떨어지지만, 국내에서 이미 넓은 고객층에 어필 가능하고 크게 계절, 유행 안 타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창출 가능함이 증명된 도시락을 사업화하자는 역발상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Bias 2: 벌써 국내업체들이 다 잡았다

미국 한식당 사업기회는 이미 국내에서 한식당 운영하면서 노하우, 사업경험 짱짱한 외식업체들이 진작에 점유했을 것이다.
💡
국내 대형 식품기업들은 현재 메인스트림 유통망 활로를 뚫어내면서 어느 정도 미국 시장을 장악하는 모양새지만, 의외로 레스토랑 업계에서 국내 외식업체 존재감은 아직 미미합니다. 한식사업 하시려거든 지금 티켓 끊으셔도 안 늦었습니다.

현재 국내업체 미국 진출현황을 뜯어보면, 2022년 기준 총 46개 업체가 67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치킨 및 제과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한식은 4%에 불과합니다. 이 중에서도 70%는 현지 법인설립 없이 마스터프랜차이즈 형태로 진출해 있어 아직까지 한식 체인사업을 현지에서 각 잡고 전개 중인 국내업체는 없다고 볼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알 만한 브랜드 중에서는 죽이야기가 2018년 뉴욕에 미국 4호점을 오픈했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특별한 동향이 관측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사업화에 적합한 아이템으로 소개드린 도시락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아이에프가 2016년 본죽을 시작으로 2010년대 초반에는 5개 지점을 운영하기도 했었지만, 현재는 뉴욕, 뉴저지 본죽 2개 매장을 제외하면 모두 철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솥은 아직 미국 진출시도 자체가 없었고요.

그럼 왜 국내 도시락 업체들은 최적의 조건을 다 갖췄다는 아이템으로 미국에서 실패했거나 미미한 존재감을 보인 걸까요?

가장 큰 패착요인은 시기적으로 너무 빨랐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당시 미국 시장에 Customer Education이 전혀 안 이뤄진 상황에서 도시락을 너무 이르게 K-아이템으로 들이밀었다는 거죠.

무려 2006년. 이 때도 각시탈 선배님이 없진 않았다.

K컬처 웨이브가 폭 넓게 진행 중인 지금에서야 "한국인들이 먹는 일상음식" 타이틀만으로도 현지에서 큰 셀링포인트가 만들어지지만,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벤또 대비 한국 도시락이 갖는 비교우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국내 시장에서 도시락 업체들 간 치고 박는 본진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도시락 프랜차이즈 시장을 보면, 매년 본도시락과 한솥이 매출액 기준 엎치락뒤치락 하는 수준이거든요.

도시락 1兆 전쟁…편의점 vs 한솥·본 ‘진검승부’
도시락 1兆 전쟁…편의점 vs 한솥·본 ‘진검승부’, 위기였던 프랜차이즈 도시락 배달시장 급팽창에 다시 주목 업계 1위 한솥 매달 신제품 내놔 본은 1만개 동시주문 체계 갖춰

가령 한솥 입장에서 미국 기반을 잘 다지면 장기적으로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과실을 누릴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장 꾸준한 실적이 찍히는 국내 시장을 소홀히 하면서 주도권 싸움에서 밀리는 리스크를 지기란 쉽지 않겠죠. 미국에 팀을 셋업하고 현지 사업화를 위해 투입 가능한 리소스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순하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아직까지 국내업체들의 해외 사업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업체들 입장에서 국내 식재료를 미국으로 수급하는 문제, 현지 법/제도 장벽, 로컬 네트워크/전문가 부재 같은 페인포인트를 굳이 감수해가며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할 유인이 낮기도 했고, 애초에 이를 극복할 역량 자체가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마스터프랜차이즈 형태로 가볍게 발만 담궈보는 시도가 대다수였던 거겠죠. 냉정하게 말해서, 국내 대기업 수준 인지도가 아니라면 대부분 국내업체들은 미국에서 사실상 로컬업체와 출발선이 동일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국내 대형 외식업체들이 이미 주도권을 잡았다면 뻔하고 재미없는 결론이겠지만 아직 그 누구도 깃발 꽂지 못한 시장이 미국입니다.

당장 미국 사업에만 100% 역량 쏟을 수 있는 팀이 나타난다면 한식 모멘텀 타고 승기 잡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사업 시작하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때입니다.

Bias 3: 요알못은 절대 안 된다

미국도 한국처럼 레스토랑 사업은 셰프 출신이거나 최소한 요식업 경험해 본 사람만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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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F&B 경험 없는 팀도 초기부터 오퍼레이션 최적화 위주로 사업에 뛰어드는 플레이북이 자리잡은 시장입니다. 오히려 이들이 훨씬 빠르게 BEP를 달성하는 경우도 많아서 단순한 메뉴에 기반한 사업은 Finance 백그라운드, 특히 월가 출신 팀에 더욱 높은 성공 가능성을 쳐주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외식사업 한다고 하면, 아마 대부분 투자자들이 처음으로 던지는 질문은 ‘전에 식당 해봤어요?’ 일겁니다. 아무리 팀 스펙이 훌륭하고 빈틈 없이 사업계획 세웠다고 해도 이 허들 못 넘기면 펀딩 첫 발자국도 못 떼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미국 시장은 꽤나 다른 양상입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F&B 트랙레코드는 투자 유치에 있어 어떻게든 가점요소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관련 경험이 없더라도 간단한 조리 포뮬러에 기반해서 초기부터 비용절감 그리고 운영효율화 위주로 사업계획을 셋업하고, 이후 빠르게 지점을 늘려가는 공식이 상대적으로 보편화된 시장이 미국입니다. 특히 뉴욕에서 월가 Finance 출신 창업가 위주로 자주 관측되는 방식인데요.

마케팅, 어카운팅 출신들이 설립해서 작년 상장한 CAVA. 최근 1년간 주가상승률이 동종업계 ETF 7배에 달한다.

이렇게 뉴욕에서 요식업 경험 전무한 팀들의 성공 가능성이 높은 데에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특수성도 한몫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Thanks, office workers: Foot traffic in Manhattan nears pre-COVID levels, report says
Placer.ai says foot traffic in Manhattan office buildings reached the highest level in four years in July, leading the nation along with Miami.

맨해튼은 기본적으로 Foot Traffic이 매우 높은 지역이기도 하고, 팬데믹 이후에도 주요 도시 중 가장 높은 음식 포장/배달 수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조건을 갖췄다는 가정 하에서는 F&B 사업자 입장에서 레스토랑이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가 가장 크리티컬한 요소라고 볼 수 있는 건데요.

특히 오피스 상권과 대학가 근처 매출이 높아서 이런 입지만 잘 잡고 무난한 메뉴와 맛을 확보했다면 손님이 아예 안 와서 망하는 경우는 드문 편입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공공연하게 식당사업을 위한 연간 최소임차료에 대한 컨센서스 ($110+/sq ft)가 존재한다거나, 창업 팀들이 보통 "임차료=마케팅 투자비용"으로 인식할 만큼 입지 중요도가 높다고 하죠.

그래서 좋은 입지 차지하려면 높은 임차료는 불가피하다 → 결국 레스토랑 사업핵심은 이걸 상쇄하기 위한 중/장기 비용절감 계획의 무결성에 달려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건데요.

대부분의 경우 사업성패가 인력관리를 통해 어떻게 턴오버를 최소화 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장기적으로 Unit Economics를 어떻게 높일지 등 운영효율화에 방점이 찍히기 때문에, 과거 F&B 경험 여부와 상관없이 오히려 Finance 출신 팀이 더욱 빠르게 BEP를 달성하는 경우도 흔하게 관측되는 거죠.

실제로 이런 팀들이 외식사업을 시작해서 빠르게 스케일하는 사례는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Sticky's Finger Joint 설립자 Jon Sherman (좌측)

뉴욕, 뉴저지 소재 치킨 브랜드 Sticky’s Finger Joint가 대표적입니다. 2012년 JP Morgan, Bridgewater 출신이 설립해서 연 추정매출 $20mm까지 몸집을 키워냈고 파운더는 이미 엑싯을 완료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최근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커피체인 Blank Street Coffee도 VC 출신 2명이 뭉쳐서 2020년 뉴욕에서 시작한 브랜드입니다. 이후 보스턴, DC를 거쳐 파죽지세로 해외까지 진출하면서 현재는 미국, 영국에 각각 44개, 40개 매장이 있을 만큼 빠르게 확장 중이고, 추정밸류는 $200mm 수준까지 올라온 상황입니다.

다시 말해 레스토랑 사업하고 싶으시거든 사장님이 마셰코 우승한 최강록 셰프일 필요도, 150만 구독자한테 인정받은 승우아빠일 필요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기본은 하시면 좋다.

요알못 無수저도 비용절감 그리고 오퍼레이션 계획만 촘촘하게 세우면, 내 브랜드 만들어서 언젠가는 조 단위 기업가치 꿈꿀 수 있는 게 미국 시장입니다.

Bias 4: VC들이 F&B는 거들떠도 안 본다

F&B 브랜드 사업은 애초에 VC 투자랑 결이 안 맞다. IPO까지 체급 못 키우면 사실상 얼리엑싯도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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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자본 접근성 덕분에 미국 F&B 시장에선 VC 펀딩트랙을 타는 사례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회수시장도 활발해서, IPO 이전 M&A를 통한 얼리엑싯도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입니다.

사실 이 시장이 "Brick-and-mortar", "Asset-heavy" 같이 VC들이 평소 싫어하는 키워드로 가득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테크 스타트업처럼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깝기는커녕 판매수량 늘리는 대로 재료비, 인건비, 물류비는 정직하게 따라 오릅니다. 대부분 경쟁사들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부족한 인지도 메꾸려면 마케팅 비도 꾸준히 태워야 하죠.

그나마 음식사업은 현금 잠기는 문제는 덜하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안정적인 캐시플로우가 보이는 시점이 아니고서야 투자자 입장에서 초기에 묻지마 베팅을 하기 어려운 산업인 건 분명합니다. 특히나 하루가 멀다 하고 AI 프로덕트가 쏟아지는 세상인 만큼 상대적인 매력도가 낮아보일 수 밖에 없고요.

하지만 시장 스케일이 달라지면 갑자기 없던 논리도 만들어집니다.

이미 팬데믹 이전 수준을 훌쩍 넘겼다. ⓒAxios

미국 외식업 시장규모는 자그마치 $1.1T—한국이 100조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15배 가까운 체급 차이입니다.

투자 성공에 대한 예상리턴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창업가들도, VC들도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든 모험자본을 레버리지할 방법을 찾아내는 곳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현재 투자 내러티브는 미국인 식습관 트렌드에 발 맞춰서 앞서 소개한 스케일 핵심조건에 들어맞고 운영효율 극대화가 가능한 아이템 위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수요가 막 형성되는 시점에 빠르게 비집고 들어가서 소비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브랜드가 될 잠재력이 보인다면 금상첨화겠죠. Household Brand로 각인된다는 건 단순히 마케팅 출혈경쟁이 필요 없어진다는 점을 넘어서 사람들의 지갑을 가장 자연스럽게 오픈하는 초강력 해자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예시 젠틀몬스터. 연중 노세일 배짱으로 유명하지만 여전히 고속성장 중이다.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실 미국은 이런 기준점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더라도 메가 시장규모 덕분에 산업 베팅에 대한 유인 자체가 한국보다 훨씬 높은 시장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덕분에 시장에 투입되는 모험자본 규모, 회수시장 활성화 정도가 어나더 레벨일 수 밖에 없고요.

Bondi Sushi 대표메뉴 마끼 롤. 마끼 정도는 김밥이 금방 따라잡지 않을까?

지금까지 소개한 모든 회사들을 비롯해서 일식 Fast Casual 업체 Bondi Sushi까지—현재 미국에서 잘 나간다 싶은 F&B 브랜드 대부분은 적게는 $1mm부터 많게는 $1B까지 VC 펀딩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자본시장 역학에 도가 튼 월가 창업가들을 중심으로 각 스테이지마다 기관자본을 끌어오며 성장하는 공식이 일반적인 상황인데요.

대표적으로 Blank Street Coffee는 모두가 알 만한 Tiger GlobalGeneral Catalyst 같은 투자자로부터 $100mm 가까운 자금을 유치하면서, 그간 업계에서 F&B 투자에 대해 남아있던 편견을 깨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자금 회수환경도 마찬가지. 워낙 레스토랑 M&A를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많아서 굳이 IPO까지 안 가더라도 Small-Mid Market 단계에서 얼리엑싯하는 사례가 지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업황부터 점검해보겠습니다.

미국 레스토랑 M&A 시장은 딜 규모, 바이아웃 밸류 멀티플에 있어 꾸준히 우상향 중입니다. 물론 매크로 영향으로 인한 다운턴은 종종 있었지만 최근 M&A 딜 성장률은 물류, 테크, 제조 섹터를 앞설 만큼 활발한 편이죠.

바이사이드 과반을 차지하는 건 SI들입니다.

Aaron Allen & Associates

기존 사업에서 극적인 볼륨확대를 이루기 어려운 대형체인들이 Top-line 증대 목적에서 중소형 프랜차이즈 인수합병을 자주 시도하는 편인데요. 2018년 미국 레스토랑 상장사 매출증가분 28%가 M&A를 통한 Inorganic Growth일 정도입니다.

현재 Yum! Brands의 Systemwide Sales (가맹+직영매출)는 $60B 수준에 달한다.

초대형 외식업 프랜차이즈 회사 Yum! BrandsInspire Brands (던킨, 배스킨라빈스, Arby’s 등)부터 사업 다각화를 노리는 스타벅스, Uber까지—총기천국 천조국 답게 대형업체들의 실탄이 상시 대기 중이죠. 최근 이들이 Post-pandemic Consolidation 목적에서 더욱 공격적인 자금융통을 준비하는 동향이 관측되는 만큼 앞으로 딜 집행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FI들도 만만치 않은데요.

멕시칸 Dos Toros, 샐러드 Chopt 등 Fast Casual 분야에서만 최소 7개 회사를 인수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최대 컨슈머 PE이자 LVMH 계열인 L CattertonTriSpanRoark를 꼽을 수 있고, 이런 대형펀드를 제외하고도 Swander Pace Capital, PG Growth Opportunities처럼 Small-Mid Market 레스토랑 딜에 특화된 컨슈머 전문 PE가 다수 포진한 상황입니다.

워낙 조용히 바이아웃되는 사례가 많아서, 딜 소식 자체가 알려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Aaron Allen

역시나 최근엔 미국인 식습관 트렌드 덕분에 주류 카테고리로 올라선 Fast Casual 딜 비중이 최소 1/3로 추정될 만큼 레스토랑 M&A 트렌드를 이끌고 있고요.

정리하면 미국은 레스토랑 브랜드도 일반 테크 스타트업처럼 VC 펀딩이 가능하고, 꼭 상장까지 갈 것도 없이 업력 5-6년차 (지점 10-20개, 매출 $20-40mm) 수준에서 충분히 회사매각이 가능한 시장여건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3. 뉴욕, 근데 이제 도시락을 곁들인

뉴요커들이 햄부기 대신 도시락을 찾는 날이 올까?

이제 제가 올해 상반기에 이 Contrarian 내러티브들에 기반해서 투자를 집행한 한식 브랜드 SOPO를 소개드릴까 합니다.

뉴욕에 소재한 SOPO는 도시락 구성의 현대식 한상차림, 그리고 Made-to-order 김밥 메뉴를 판매하는 Fast Casual 브랜드입니다. 9월 중순 첫 매장을 맨해튼 Midtown South 지역에 오픈했고요.

메뉴총괄 셰프는 과거 미슐랭 3스타 Le Bernardin 등 파인다이닝 근무 경험이 있긴 하지만, 사업 전반적인 계획과 오퍼레이션을 담당하는 코파운딩 팀은 김태헌 대표 (前 뉴욕 Citigroup IB, 데이터헌트 대표)를 중심으로 정세주 (Noom 의장), 이승윤 (Story 대표, 前 Radish 대표) 등 F&B 사업과는 접점이 없던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인 플레이트 구성은 우리가 아는 한식 한상차림과 거의 흡사합니다.

밥/샐러드+고기반찬 1종+사이드반찬 3종+소스 1종으로 구성된다.

한국인들이 서울에서 먹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한식 오리지널리티를 최대한 살린 불고기, 제육볶음, 시금치/단호박 무침, 간장계란 같은 메뉴가 들어갔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재미있게도 옥수수수염차, 칠성사이다, 갈아만든배 같이 음료도 한국 제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치 부리토 느낌으로 고기, 반찬 재료들을 김밥 형태로도 말아서 판매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만 이 회사에 대한 투자기회를 포착한 건 아니겠죠. 국내/외 유명 인사들도 최근 하나 둘씩 투자자로 합류하고 있습니다.

‘Homeless billionaire’ Nicolas Berggruen wins Hearst estate auction with $63.1-million bid
The co-founder of the Berggruen Institute think tank beat out five other bidders at a heated courthouse auction that lasted about 45 minutes.

진짜 집 없나 했더니 3년 전에 천억짜리 집 샀단다. 기만이었다.

대표적으로 2012년도 버거킹 Controlling Stake를 인수했고 국내에는 "집 없는 억만장자" 타이틀로 알려진 Nicolas Berggruen, a16z 파트너이자 Web3 투자 구루로 유명한 Chris Dixon, 그리고 THEBLACKLABEL 테디 등이 주요 주주로 들어와 있습니다.

아마 이쯤에서 제가 어떤 배경에서 SOPO에 투자를 결정하게 됐고, 왜 이 팀이 미국에서 캐주얼 한식 아이템으로 Household Brand가 될 것으로 봤는지 감이 오셨을 것 같습니다.

✅ 미국에서 사업화 할 한식 아이템은 한국에서 스케일이 검증된 메뉴여야 한다.

✅ 아직 한식당 사업기회를 국내업체가 유의미하게 점유하지 못했다. K푸드 모멘텀 타고 지금 미국에 100% 리소스 투입하는 신생 팀에 되려 승산 있다.

✅ 간단한 조리 포뮬러에 기반하는 메뉴는 외식업 경험 없는 팀도 꼼꼼하게 비용절감, 오퍼레이션 계획 세우면 성공시킬 수 있다.

✅ 초기부터 VC 펀딩 유치하면서 덩치 키우는 플레이북이 통하는 시장이다. 굳이 IPO까지 안 가도 얼리엑싯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에서 한식사업 시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지금—맨해튼을 시작으로 조만간 미국 전역으로 뻗쳐나갈 포텐셜이 충분하다고 판단하는 핵심근거입니다.

백종원 아니어도 누구나 레스토랑 사업으로 아메리칸드림 가능한 나라, 미국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한국 울타리 안에 갇혀서 좌절할 필요도, F&B 경험 없다고 주눅들 이유도 없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아이템 가지고 가서 일단 깃발 꽂으시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4. 에필로그: 다이어트 말고 벌크업 합시다

장장 두 편에 걸쳐 미국 한식사업 시장성 그리고 내러티브를 분석해 본 이번 시리즈는 다시 돌고 돌아 저만의 국뽕철학 공유드리면서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국뽕: 일종의 국수주의와 자국우월주의, 극단적 형태의 민족주의 등이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서, 비정상적이고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자국을 옹호하며, 그것을 당연시하는 태도

나무위키만 봐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가득하죠.

사실 전 지나치게 엄격하고 염세적인 이 프레이밍이 싫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별 구분없이 애국심과 국뽕을 번갈아 쓰는 세상인데, 이런 시선이 알게 모르게 국뽕 포비아를 조성하고 그 덕분에 딱 적당한 자긍심마저 극단으로 내몰리는 것 같거든요.

국뽕을 항상 나쁘게만 규정해야 할까요? 애교 수준으로 아주 약간의 편향심 섞인 나라사랑과 정상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쇼비니즘은 분명 구분되어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어마어마한 나라입니다. 최근 프랑스 정부에서 신분증에 불어와 영어를 동시 표기하기로 하자마자 주류 언론에서 "앵글로색슨에 대한 굴복", "언어를 둘러싼 항복"이란 반응이 쏟아질 정도였죠.

누군가는 이를 두고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태도라고 비판합니다만, 글쎄요. 프랑스 문화 자체의 경쟁력과는 별개로—때로는 과해 보이는 프랑스인들의 자아도취가 이 나라 문화 불씨가 절대 꺼지지 않게끔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전 생각합니다.

17세기부터 지금까지 클래식, 문학, 미술, 음식 같은 소위 고급문화에서 변함없는 넘사벽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이 어쩌면 프랑스 사람들의 국뽕에 있는 거 아닐까요.

그냥 채영이가 좋아하는 랜덤게임 했을 뿐인데 5일 만에 유튜브 1억뷰를 넘겼습니다.

글로벌 차트 올킬은 그렇다 치고, 이젠 해외에서 윤수일까지 소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전고점 경신이 불가능해 보였던 기록들을 또 천장 뚫으면서 증명 중인 K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이 불씨가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려면 한국인들부터 먼저 최면 걸고 전세계에 국뽕 보여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미쳐야 남들도 미치는 거니까요.

어차피 국뽕 빼기엔 다이어트 유혹이 너무 많은 세상이기도 합니다. 저도 지난주부터 독하게 해봤는데 그 2주 사이에 노벨 문학상 뉴스가 터지고 외국인들이 술게임 따라하기 시작하더군요. 깔끔하게 포기했습니다.

그게 K푸드건, K팝이건, K뷰티건—당당히 자랑스러워해도 괜찮습니다. 우리 건데 뿌듯한 게 당연하지 않나요. 오늘부터는 죄책감 내려놓으시고 다들 마음 편하게 국뽕 벌크업 하셨으면 합니다.


끝맺음 (ft. 자소서)

전 지금은 투자업계를 잠시 떠나 Web3 프로토콜 디자인, 토크노믹스 설계 등 사업 컨설팅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 전까지는 VC업계에서 약 3년간 근무하면서 국내외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짐작하시다시피 대중문화 그리고 소비재 산업, 그 중에서도 국뽕컨슈머 K컨슈머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죠.

게임 스튜디오,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자체 LLM을 만드는 AI 스타트업, 스마트글래스 카메라 SoC 제조업체 같이 매우 다양한 딜을 검토했었지만, 결국 제일 마음이 가는 건 엔터테인먼트, F&B, 패션 같은 영역이더라고요. 감사하게도 연이 닿아 K팝시장 투자도 BIGC (글로벌 K팝, K콘텐츠 팬덤시장을 타겟하는 테크 스타트업)을 통해 경험했던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한국 포함 글로벌 컨슈머 시장에서 어떤 트렌드가 관측되고 있는지, 투자자로서 눈여겨 볼 지점은 무엇인지 소개드릴 예정입니다.

이번 글 피드백을 포함해서 저와 이야기 나누고 싶거나 국뽕 배틀하고 싶은 모든 분들은 언제든지 카톡, 지메일 혹은 링크드인 (jayjeskimo)으로 편하게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