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는 BTS 팬덤 '아미'를 사로잡을 수 있을까? - 1) IP에 대하여
K-POP 아티스트 IP를 OSMU한다고?
2021년 주식 상승장의 말미 4대 기획사로 대표되는 엔터주는 그야말로 떡상했다. K-POP시장의 성장, 소속 아티스트들의 인기 상승과 더불어 아티스트 IP를 활용한 OSMU와 팬덤 플랫폼의 확장이 그 주된 이유였다. 기획사가 그리는 팬덤 수익화는 얼마나 실효성 있는 전략일까?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자는 VC에서 엔터테인먼트 영역에 투자하고 있다. 요즘 느끼는 재밌는 점은 자본 시장이 바라보는 엔터업계와 소비자가 바라보는 엔터업계는 괴리가 크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자본시장에 앉아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상당한 K-POP 소비자이기도 하다. 앞으로 할 얘기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TMI를 조금 방출하자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3대 지상파 음악방송(뮤직뱅크, 인기가요, 음악중심)을 섭렵하였고, 군대 시절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걸그룹의 90%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유튜브 알고리즘의 1/3은 아이돌 영상이 점유하는 고관여 소비자다. 투자자이자 소비자로서 '대장주' 하이브를 중심으로 K-POP 엔터테인먼트를 둘러싼 내러티브를 돌아본다.
아티스트 IP?
2021년 3년 BTS의 기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하이브'로 사명을 바꾸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엔터테인먼트'를 뗐다는 사실인데, 방시혁 의장은 단순 매니지먼트사에서 더 나아가 "음악을 기반으로 확장된 콘텐츠와 서비스를 창출하고 팬들에게 전달하는 종합적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하이브가 이 기치에서 내세운 전략은 크게 두 가지인데, 1) 하이브가 육성한 아티스트 IP를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재생산 하는 것과 2) 팬덤 플랫폼 확장을 통한 공급-유통 밸류체인 통합이다. 이번 글에서는 IP에 대해서 먼저 다루어보자.
국내 자본시장에서는 흔히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IP 홀더'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영화 제작사, 웹툰 제작사, 게임 개발사 등과 같은 위치에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배치 시키는데, IP홀더로서 콘텐츠 제작 역량을 바탕으로 굉장히 재밌고 흥행하는 아이돌을 제작해내면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1차 수익과, 아이돌 IP를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생성(OSMU; One Source Multi Use)하여 발생하는 2차 수익까지 얻을 수 있기에 엄청난 잠재가치가 있다는 맥락이다. 게다가 한국인은 어마어마한 콘텐츠 생산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아래 케이스를 보자.
HYBE와 ARMY의 동상이몽
2021년 11월 하이브는 온라인으로 진행한 IR을 통해 두나무와의 협업을 통한 아티스트 NFT 발행을 예고했다. 방시혁 의장은 팬덤이 모으는 포토카드와 다를 바 없다는 언급을 하였다. 또한 BTS 웹툰 등 IP를 활용한 여러가지 형태의 콘텐츠 생산을 발표했다. 자본시장은 열광했다. '하이브가 아티스트 휴먼 리스크에서 벗어나서 IP를 활용한 OSMU(One Source Multi Use)를 통해 안정적으로 팬들로부터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위 영상의 댓글창에서는 BTS 팬덤 아미(ARMY)들의 어마어마한 반발이 일었다. 트위터에서는 '#BoycottHybeNft' 운동이 생겼다.
"나는 예전이 그리워. 하이브는 돈 때문에 우리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었어."
"너네의 이익의 위해 BTS를 사용하지 마." (!)
"하이브의 아티스트는 점점 더 물건이 되고 있고,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어."
이 시장 결코 만만치 않다.
What's So Different?
웹소설 IP를 웹툰화 하는 것. 웹툰 IP를 영상화 하는 것. 이러한 형태의 IP OSMU는 최근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다. 웹툰이 드라마 혹은 영화로 제작되는 사례는 2017년 10건에서 2021년 17건으로 지속 증가해왔고, 현재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건을 합치면 이를 훨씬 상회한다. '미생', '신과함께', '스위트홈', '지옥' 등 걸출한 영화와 드라마들이 웹툰 IP로부터 재탄생해 뛰어난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이러한 무형의 콘텐츠 IP를 OSMU하는 경우에도 원천 IP의 팬들이 반발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책으로 이미 대성공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팬들이 영화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으나, 해리포터 영화 역시 대성공하여 다행히 무마되었다. 반대로 이미 많은 팬층을 보유한 마블 코믹스 시리즈의 '판타스틱4'나 DC 코믹스 시리즈의 '그린랜턴'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대거 출연한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 및 작품성에서 모두 실패하며 조롱거리로 전락하였다.
이처럼 2차 저작물에 대한 흥행 여부는 예측하기가 어려움에 불구하고, 무형의 콘텐츠 IP를 갖고 있는 제작사들은 끊임없이 OSMU를 시도한다.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무형의 콘텐츠 IP는 변형이 쉽다.
IP는 스토리일수도 있고 캐릭터일수도 있다. IP의 원천 소스는 제작자의 머리 속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준거점이나 변수가 없기 때문에 각종 콘텐츠 형태에 따라, 전략적 목표에 따라 변주해 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물론 원천 IP에 대해 강성 팬덤이 존재 할 경우 변화를 주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는 있지만..
2) 콘텐츠 IP OSMU는 동일한 시장만을 타겟하지 않는다.
물론 원천 IP의 팬 베이스를 레버리지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마블 코믹스를 영화화 했다고 코믹북을 보는 마블 팬만 영화관에 찾아올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뒤집어서 얘기하면 한국의 수많은 마블 팬 중 마블 코믹스 원작을 찾아 읽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 틀림없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책, 코믹북, 웹툰, 웹소설 등에서 좋은 원천 소스를 찾아, 다른 콘텐츠 형태에 맞게 변용시키고 이를 통해 더 큰 시장에서 또 다른 팬덤을 확보한다. 원천 IP를 갖고 있는 IP홀더는 여러 콘텐츠 형태로 license out을 하며 시장과 돈의 크기를 키워 나간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업은 다르다.
1) IP 이전에 '진짜 사람'이 존재한다. 즉 변형이 쉽지 않다.
엔터테인먼트업에서는 '사람'인 아티스트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존재한다. K-POP 팬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은 기획사나 2차 생산 콘텐츠가 아니라 Real Human 아티스트 그 자체, 그리고 그와의 상호작용이다. 물론 기획사는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 연습생부터 아티스트의 역량을 길러내고 스토리와 컨셉, 캐릭터를 아티스트에게 입힌 뒤, 7년짜리 장기 전속계약을 통해 아티스트 IP 사용 권리와 높은 수익 Share 비율을 가져오지만, 결국 이 시장에서는 공급망의 말단에서 아티스트가 소비자인 팬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제작자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하는 무형의 콘텐츠 IP와는 달리 제작자가 온전히 컨트롤 할 수 없는 외부의 아티스트가 IP의 준거점으로서 존재하기에 다른 콘텐츠 형태로 뚝딱뚝딱 변형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2) 기획사가 2차 콘텐츠를 통해 수익화 하려는 시장이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바로 그 팬덤이다.
10월 29일 넷마블의 BTS 게임 개발을 중단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이브는 아티스트 IP를 활용하여 BTS 매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로 게임을 뽑고 있었고, 이와 같은 전략적 방향성에서 넷마블과의 IP 협업을 통해 'BTS월드', 'BTS 유니버스 스토리' 등 BTS의 IP를 활용한 게임을 지속 출시했으나 실적 부진에 당면하였다. 세번째로 BTS의 캐릭터 IP '타이니탄' IP를 활용한 리듬게임 'BTS드림: 타이니탄 하우스'를 개발하고 있었는데 신규 게임은 테스트 이후 호응이 좋지 않아 최종 정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넷마블 관계자는 'BTS 팬층과 일반 이용자 간 게임에 대한 선호도 차이가 컸다.'라고 말했다.
기획사는 아티스트에서 캐릭터, 스토리, 세계관만 추출하여 게임 등 2차 콘텐츠를 생산하는데, 그 가장 큰 이유는 아티스트의 활동에서부터 나오는 매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함이다 . 그런데 역설적으로 2차 콘텐츠를 판매하려는 대상이 새로운 시장이 아닌 아티스트를 사랑하는 팬덤이다. 팬덤은 기획사가 아티스트를 위해 음악 제작과 유통, 매니지먼트에 집중하길 바랄 뿐, 아티스트 없는 콘텐츠를 자신들에게 팔아서 수익을 챙기길 원하지 않는다. 결국 동일한 고객에게 팥 없는 찐빵만 파는 꼴이다.
아티스트는 IP가 아니다.
IP(지식재산권)는 사전적으로 '무형적인 것에 부여된 재산적 가치에 대한 권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기획사가 K-POP 아티스트로부터 권한을 갖는 IP는 그룹명, 아티스트 활동명, 부여된 캐릭터, 세계관 등의 무형적 요소에 불과하다. 아티스트 그 자체는 당연하게도 IP가 아니다.
남자 아이돌 그룹 '비스트'는 2017년 소속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비스트'라는 그룹명의 상표권을 기존 소속사 큐브Ent로부터 옮겨오지 못하면서 '하이라이트'로 개명하였다. 그들의 팬덤은 이를 따라서 'B2UTY'에서 '라이트'로 팬덤명을 바꾸었다.
본질은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의 상호작용. 이것이 필자가 엔터테인먼트업을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닌 크리에이터 비즈니스에 가깝게 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