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가 지분 투자만 하란 법은 없잖아요?
음반 유통 투자를 진행한 이유와 VC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
듣도 보도 못한 음반 유통 투자
2022년 12월, 15억원 규모의 음반 유통 프로젝트 투자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 4월 IRR 32%의 준수한 성과로 투자 건에 대한 회수를 완료했습니다.
해당 투자 건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동안, VC, 스타트업, LP 등 주변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받아 왔는데, 그 중 가장 빈번하게 들렸던 질문은 '너는 VC가 왜 그런 걸 하고 있어?'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을 제가 그동안 낭투파에 적은 글들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
VC도 하나의 산업이다
많은 분들이 인지하시다시피 VC 산업 역시 거대한 하나의 산업입니다.
투자사의 직원으로서 매몰되어 있다보면 '투자 대상 산업'을 찾고 공부하는 것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만, 모든 산업계 종사자가 그러하든 투자심사역이 스스로 앉아있는 '투자 산업'에 대해 공부하고 관점을 갖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분명 큰 차이를 불러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낭투파를 통해 VC 산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변화하고 있고 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음을 (감히!) 주장한 바 있습니다.
반 년에 걸쳐 작성한 위의 시리즈 글을 통해 2010년대 중후반 벤처 시장에서 형성된 모바일 플랫폼을 위시로 한 버블이 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꺼지기 시작하면서, VC 산업에서 유동성이 유출입 및 운용 되는 방식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산업 내 플레이어인 VC와 스타트업의 플레이북을 바꾸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제를 필두로 지난 6월 낭투파의 첫번째 오프라인 행사 "낭만 토크#1: VC산업도 혁신할 수 있을까요?" 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벼랑 끝' 시리즈와 낭만토크 행사에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기준 금리 인상은 LP의 조달 금리를 높이고 있으며, 기업 밸류에이션의 하락은 VC 펀드의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있다. 이에 따라 VC 펀드의 출자매력도는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스타트업 자본 산업 전반에 대한 유동성 유입을 줄이고 있다.
- 실제로 신규로 조성되는 펀드의 수와 액수는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으며, VC 플레이어는 빠르게 양극화 되고 있다. 국내 VC의 50%는 투자 가능한 자산이 없거나 100억원 이하인 반면, 18%는 500억원 이상의 투자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
- VC 중 여력이 부족한 하우스는 생존을 위해 투자를 LP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과하게 일치시키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단기적인 자금 조달에 집중하는 반면, 여력이 충분한 하우스는 현저하게 완화된 경쟁강도를 바탕으로 수익성 높은 투자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플레이북을 만들어가고 있다. VC 플레이어들은 생존 혹은 번영을 위한 저마다의 고민을 갖게 되었다.
- 이와 같은 벤처 금융 시장 후방의 상황은 전방에 있는 스타트업에게도 자금 조달 관점에서의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과거에 비해 스타트업에게는 투자 받을 수 있는 돈 자체가 없거나, 돈을 유치하기 위해 지분을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VC 산업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현직 VC로 활동하고 있는 저에게도 많은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미시적으로는 개인적인 커리어 선택 및 빌딩에 있어 생존의 문제를 더 디테일하게 생각하게 되고("이러다 내 밥벌이가 어려울 수도 있겠네.."), 거시적으로는 한국 VC 산업의 성숙화 정도와 성장 모멘텀 확보 가능 여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벼랑 끝의 VC 산업' 후반부에 적은 바와 같이 1) VC의 전문성에 대한 재정의, 2) 금융 구조에 대한 질문 던지기를 골자로 VC 투자 재구조화를 진행하고 실제 실행 사례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물 중 하나인 '음반 유통 투자'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의 딜레마
고민의 시발점은 올해 초 작성한 위 글에 언급한 K-POP 전문 글로벌 유통사 카이 미디어 팀과의 대화였습니다. 카이 미디어는 제가 2022년 상반기 투자한 스타트업으로, Hello82라는 브랜드 하에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K-POP 유통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입니다. 유튜브/틱톡 등 영상 콘텐츠에서 출발하여 현재는 음반 및 MD 유통&판매 및 행사 개최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카이미디어가 속해있는 K-POP 산업은 달이 지나면 지날수록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2022년 연간 출고된 국내 피지컬 앨범은 약 8,000만장인데, 2023년 1월부터 7월까지 출고된 앨범은 약 7,000만장으로 올해 말까지 연간 1억장이 넘는 앨범이 출고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로서도 1조원에 육박하는 시장 규모를 형성하였는데, 연간 20%가 넘는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거죠.
이러한 시장 확장의 가장 큰 요인은 다른 무엇보다 K-POP에 대한 글로벌 수요의 성장입니다. 써클 차트에서 집계한 아래 그래프를 보면 피지컬 앨범의 수출 금액은 지속적으로 우상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수출 대상 국가가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집중되어 있던 것과는 달리 2023년 상반기 기준으로는 수출 규모 2위에 미국, 4위에 독일이 랭크되는 등 K-POP 수입국 Top10 중 서구권 국가가 6개국일 정도로 북미/유럽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K-POP을 소비하는 시장의 저변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카이미디어는 LA를 기반으로 K-POP 유통 사업을 전개하며 이러한 글로벌 수요의 폭발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팀으로 매출을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고민은 유통 비즈니스 특성 상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초기 자본이 필요하다는 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게는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방안이 많지 않습니다. 국내 스타트업을 기준으로는 각종 정부지원금을 제외하면 VC에게 Equity를 주고 자본금을 확충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난 글에서 작성한 바와 같이 최근의 경제적인 상황은 스타트업이 VC에게 지분투자를 받는 것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LP의 조달금리가 상승하면서 벤처 펀드의 투자수익성 확보가 중요한 마일스톤으로 부상한 점, 상장시장을 시작으로 전체적인 기업가치의 Top-line이 낮아져 있는 점, 투자 여력이 충분한 VC가 많지 않기에 자금을 확보하고 있는 하우스의 협상력은 증대되며 매수자 우위 시장으로 변화한 점 등의 요소는 VC에게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 힘든 상황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스타트업은 예전과 같은 규모의 돈을 유치하기 위해 기존에 비해 훨씬 많은 지분을 팔아야 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상황은 창업팀 뿐만 아니라 기존에 투자하여 주주로 참여하는 투자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사업 성과가 충분히 올라오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낮은 밸류에이션에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가 많이 희석될 것이기에 최선의 선택인지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분 희석을 방지하기 위해 자본 조달을 하지 않는다면, 높은 시장 성장세와 훌륭한 팀의 역량에도 불구하고 매출 상승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높은 기업가치 달성에 대한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좋은 시장에 역량 있는 팀. 돈만 있으면 매출도 크게 성장하고, 공헌이익률이 좋으니 BEP도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을텐데.. 다른 주주를 들이자니 높은 밸류를 못받을 것 같고, 내가 더 투자하자니 명분도 없고,지분율도 너무 높아지고.."
지분 투자로부터의 Frame-Out
벤처캐피탈 외의 금융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면 다양한 Asset class를 활용한 복합 투자 모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로쓰 단계의 PE가 많이 전개하는 '메자닌(Mezzanine)' 방식이 있습니다. 메자닌은 중위험-중수익을 지향하는 형태의 투자 증권을 칭하는데,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의 채권과 주식이 혼합된 형태를 통해 투자자 입장에서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챙기는 기법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2020년 3월 에어비앤비는 상장 직전 발발한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빠른 자금조달이 필요했고 실버레이크와 식스스트리트 파트너스로부터 대출과 지분투자가 혼합된 형태의 자금 USD 1Bn을 유치하였습니다. 코로나라는 큰 거시적 리스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에어비앤비는 해당 자금을 바탕으로 2020년 12월 상장에 성공했고, 실버레이크와 식스스트리트는 불과 9개월 만에 1조원의 차익을 만들어냈습니다. 스타트업과 투자자 간의 어마어마한 win-win 사례를 만들어낸 것이죠.
크립토 시장에서도 흥미로운 금융 기법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펀더멘털이 약한 시장이기 때문에 더욱 많은 걸까요) 대표적으로 크립토 기업은 향후 발행될 토큰에 대해 Equity 참여 주주에게 지분율에 비례하여 양도하거나 낮은 가격에 매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SAFT 계약의 형태로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각종 규제로 인해 크립토 기업이 직접 상장 되기에는 난이도가 높고, 탈중앙화 메커니즘 상 프로토콜의 부가가치가 기업의 Equity로 집중되기에는 어렵기 때문에 크립토 기업의 Equity는 유동화가 어렵습니다. 대신에 크립토 기업은 프로토콜의 부가가치를 직접 흡수하는 토큰을 지분 투자자에게 지분율에 비례해서 주는 것이죠. 특히 토큰은 중앙화/탈중앙화 거래소 상장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투자자는 거래소 내의 토큰 매도를 통해서 Equity 투자 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통상적인 스타트업 Equity투자에 비해 기간이 훨씬 빠르다는 점은 가산점 요인입니다. 지분과 토큰이라는 두 가지 Asset class를 섞었기 때문에 가능한 투자 방법론이죠.
위와 같은 사례를 통해 복수의 Asset class를 활용하면 '리스크'와 '수익률'이라는 두 가지 레버를 조절하면서 매력적인 투자 구조를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디테일을 더할 수록 회수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 회수 기간에 초점을 맞춘 모델, 수익배수에 초점을 맞춘 모델 등 다양한 투자 구조를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유동성을 유입시킬 수 있는 채널로서 기능합니다.
음반 유통 투자를 통해 얻은 것
다시 카이미디어와 진행한 음반 유통 투자로 돌아오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 글의 제목처럼 VC가 지분 투자만 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는 실제로 창업투자회사, 창업기획자 등의 라이선스를 관장하는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을 보면 알 수 있고, 신기술금융사나 PEF로 가면 그 범위는 훨씬 완화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 매크로 환경 악화에 따른 VC 펀드 유동성 유입 감소 및 스타트업 자본 조달 난이도 상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분이 아닌 다른 Asset class를 벤처 금융 영역에도 도입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2022년 12월 카이미디어에서 진행하는 음반 유통 사업 중 일부를 별도로 분리시키며 자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15억원 규모의 파이낸싱을 진행했고, 해당 사업을 통해 발생한 수익으로부터 투자금 및 수익에 대한 회수를 완료했습니다. IRR 32% 선에서 성공적으로 회수하면서 투자자의 투자 성공과 스타트업의 사업 성공이라는 Win-Win 사례를 만들었고, 해당 성과를 기반으로 2023년 들어 두 건의 파이낸싱이 추가로 이루어졌습니다.
- 스타트업이 얻은 것
스타트업이 얻은 것은 당연히 규모 있는 자본을 조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지분의 희석 없이, 빠르고 싸게 말이죠.
모든 스타트업이 인지하다시피 VC에게 투자를 받는 것은 오랜 과정이 걸립니다. 단순히 시장과 사업에 대한 설명 뿐만 아니라 창업자의 도덕성과 꿈에 대해서도 설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자금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필요한 자금도 있습니다. 신사업 부문 보다는 투자자금에 대한 매출 치환이 빠른 캐쉬카우 사업 부문이 이에 적합하겠죠. 이러한 캐쉬카우 부문을 빠르게 확보한 자금을 통해 규모를 키우면, 신사업 영역에 투자를 하기 위한 체력이 확보되기도 합니다. 카이미디어는 해당 파이낸싱을 기반으로 자본을 성격에 따라 각 사업 영역에 재배치 했고, 이는 곧 3배 이상의 매출액 상승과 BEP 달성이라는 훌륭한 재무 성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카이미디어는 이제 (이론적으로는) 지분투자를 받지 않아도 되는 재무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파이낸싱 모델을 운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의 역량입니다. 팀의 역량이 없다면 Lose-Lose 게임으로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충분한 팀 역량을 자신할 수 있다면 자본은 성과를 가속화시키는 좋은 촉매가 됩니다.
- VC가 얻은 것
스타트업의 자본 조달이라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한 이러한 복합 투자 모델은 생각보다 VC의 입장에서 많은 이점이 있었습니다.
1) 글자 그대로 Value-Add
VC 업계에서는 Value-Add 라는 단어가 논쟁적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다른 경쟁 자본과의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해 VC 단에서는 후속투자 연결, 전문가 연결, 채용 중개 등 다양한 기능을 보유한 자본이 다수 생겨나고 있는데 이러한 Value-add 활동의 실질적인 효용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Value-add'를 실제 기업가치를 올리는 'Valuation-add'로 치환하면 고민이 단순해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VC는 스타트업의 자본 파트너'로 재정의 하는 것이 가장 직관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VC가 스타트업의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매출을 올리기 위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그래서 결국 기업가치를 키우기 위한 자본 측면의 활동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VC가 다양한 금융 지원 수단을 보유하면 할수록 훨씬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
지분 외의 파이낸싱 기법을 도입하는 이유는 보유한 지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함입니다. Asset class 간의 Win-Win 효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설이죠.
2) 산업 전문성 확보
VC 업계에서는 '투자 검토 하다가 어느 순간 눈을 감는다'는 표현이 종종 들립니다. 투자 검토를 하다보면 스타트업이 처한 환경이나 팀의 상황은 너무나 가변적이기에 최대한 디테일한 분석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대표님이 잘 하시겠지..', '시장이 잘 크겠지..'와 같은 희망과 함께 분석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오곤 한다는 말이죠. 통상적인 VC 투자의 경우 기간이나 운 등의 변수가 너무 크게 작용하기에, 많은 분석과 투자 성과의 상관 관계가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제가 진행한 음반 유통 투자 사례처럼 특정 사업을 별도로 분리하여 파이낸싱을 할 경우 절대로(!!) 분석을 멈출 수 없습니다. 누가 누구와 어느 타이밍에 거래를 하는지, 이 사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어떠한지 정말 디테일한 수준까지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죠. 이는 자연스럽게 음반 유통 산업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는데요, (과거의 저와 스스로 비교해보아도) Equity 투자 검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는 깊이의 차이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3) 수익률과 리스크에 대한 재구조화
VC 펀드는 통상적으로 6~7년 동안 유동성이 묶이며 평균 IRR 10% 수준의 수익률을 가져다주는 투자 상품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자본 시장에서도 새로운 Asset class 가 도입된다면 이러한 수익 구조는 다변화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이 벤처 시장을 쳐다보면서도 안정적인 펀드, 회수가 빠른 펀드, 리스크는 크지만 수익배수가 높은 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는거죠. 이는 현재의 스타트업 자본 시장이 처한 '유동성 유입 감소'의 문제를 타개할 가능성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각의 Asset class 들은 다른 권한과 역할을 보유하기 때문에, 투자한 스타트업의 리스크 역시 다양한 asset class의 도입을 통해 더 디테일하게 관리될 수 있을 것입니다. 스타트업을 둘러싼 환경이 운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 사실이 운을 제외한 영역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안해도 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리스크 관리의 레벨을 높이는 것 역시 유동성을 유입시킬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험의 확대: 벤처대출 플랫폼 '레베뉴마켓'
카이미디어와 음반 유통 투자 실험을 구조화하며 여러 형태의 고민이 영글어가던 2022년 11월 벤처 대출 플랫폼 '레베뉴마켓'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브이원씨의 Seed 라운드 리드 투자하였습니다.
벤처 대출(Venture Debt)은 초기 단계 기업에게 유동성을 제공하는 대출을 총칭하는데, 넒은 의미로는 신주인수권부사채와 같이 지분이 엮여있는 대출 상품과 매출채권 팩토링, 설비 파이낸싱처럼 확정된 매출 혹은 담보 잡을 수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는 상품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레베뉴마켓은 여러 벤처대출의 형태 중 별도 조건이나 담보 없이 반복 매출을 기반으로 대출을 해주는 'Revenue-Based Financing' 플랫폼 사업을 전개하고 있죠. (RBF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 글을 참고해주세요)
벤처 대출은 해외 스타트업 금융 시장에서는 굉장히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상품입니다. (그 유명한) 실리콘밸리뱅크(Silicon Valley Bank, SVB)를 중심으로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벤처 대출 컨셉이 존재하였고, 2020년에는 미국 벤처대출 시장만 42조원 규모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국내 벤처 금융시장도 성숙화 과정을 거치며 벤처 대출이라는 Asset Class 자체에 대한 수용도도 높아질 것이라 보고 있고, 특히 VC의 주 업무인 지분투자와 결부되면 더 큰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다는 가설을 갖고 실험 아이디에이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룰을 어기지 않는 일탈
썸네일 사진은 2022년 10월 NASCAR 레이싱에서 나온 장면입니다. 10위로 달리고 있던 로스 체스테인은 마지막 랩에서 순위를 뒤집기 위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인코스를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속도를 최대로 뽑으며 벽타기를 시전합니다. 고속으로 곡선 코스를 탈 때 생기는 원심력을 벽이 받쳐주면서 순식간에 5위까지 올라가죠.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이 기술은 금지되었습니다 :) )
매크로 경제의 하락은 벤처 금융시장의 외형적 성장에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이는 곧 시장이 더 효율화 될 수 있는 (혹은 '되어야만 하는')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룰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은 실험들을 통해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법을 찾아나가고 있습니다.
벽타기 레이싱이 훨씬 높은 순위로 마무리될지, 벽에 부딪치는 사고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시도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여러 스타트업 파트너들과 실험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낭투파를 통해 그 과정을 지속적으로 공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민이 아직도 부족한 영역이라 많은 선후배, 동료분들의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같은 고민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으시면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 언제든 연락 부탁드립니다.